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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96호

장 소 :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동 산190번지

 

강동구 상일동 산 190번지에는 밝고 아름다운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유창의 묘와 자손들의 묘가 있다. 그 당시의 분묘제도와 석조미술을 대표할 만한 문관석 2기, 망주석 2기와 함께 상당히 우람한 당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묘비가 있다.

유창(1352-1420)은 조선 초기의 유명한 문신으로 천성이 부드럽고 너그러웠으며 사람들은 당나라 위사덕(委師德)에 견주었는데 이런 내용이 묘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그의 생애와 업적은 물론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1987년에 세운 신도비에는 태조께서 “유창은 강정하고 순수하며 근신하고 겸손하며 도량이 깊고 문장이 뛰어나며 이름은 급제(及弟)에 오르고 벼슬은 청반(淸班)에 높았으며 의지가 굳고 스스로 학문을 닦아 성의성심의 도를 자득하여 방명(芳名)을 일찍 세워서 항상 전현(前賢)을 앙모하고 높은 벼슬에 몸은 매여 있으나 어찌 말속(末俗)에 따랐으리요” 라고 교서를 내린 기록이 있다.

신도비란 신도(神道)에서 따른 것으로 보여 지는데 신도란 풍수지리학에서 동남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부분의 신도비는 입석 위치가 묘 뒤쪽에서 바라볼 때 동남쪽에 해당하고 있다는 점이 유창의 묘역에서도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유창 묘역에는 배위인 광주이씨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봉분의 호석부분을 방형으로 축조하였다. 묘비는 높이 180cm, 한 변의 길이가 33.5cm인 정사면체이며 ‘有明朝鮮開國功臣玉川府院君贈領議政文僖劉公敞之墓 辰韓國夫人廣州李氏祔右’라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망주석 1쌍과 장명등은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인상은 복두공복차림을 하고 있는데 그 크기는 각각 149cm, 155cm이다. 봉분 뒤쪽에 ‘ㄷ'모양의 곡장(曲墻)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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