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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서원(龜巖書院)

서울에서 유일한 사액서원(賜額書院)인 구암서원은 거북 모양의 바위절터 위에 있었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훼령으로 중설서원이 아닌데도 안타깝게 훼철을 당하고 말았다.

1898년 후손들이 장차 중건할 때를 기다리면서 구암서원터에 구암서원구기비(龜巖書院舊基碑)를 세워 놓았는데 1988년 88올림픽도로를 개설하면서 구기비를 암사동 산 1-1번지,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광주(廣州)가 배출한 성리학자로 둔촌(遁村) 이집(李集), 석탄(石灘) 이양중(李養中),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 소암(疎菴) 임숙영(任叔英), 수몽(守夢) 정엽(鄭曄), 겸부(兼夫) 정성근(鄭誠謹) 등 6현을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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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관어정지(觀魚亭址)

구암서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자(亭子)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장소이다. 옛 지도에 ‘觀魚亭’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고덕동 사람들은 관우정이라 잘 못 부르고 있다. 이곳은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물고기가 많아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즐겨 낚시를 하던 곳이다.

2001년 9월 명지대학교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 팀과 함께 구암서원터의 지표조사를 하던 중 취수장 동쪽 구릉지에서 관어정의 유구로 보이는 석재와 와편 등을 수습하였는데 불행하게도 군사시설인 참호가 설치된 지역으로 참호 조성시 일부 석재를 노출하였고 주변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유물로 보이는 와편들과 토수기와 1편의 완형을 수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