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15일 광복으로 일인(日人) 중심의 면 행정을 한국인으로 대치하여 면 행정은 일대 쇄신을 이룩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구천면사무소에는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어 시대에 편승한 젊은 청년들을 의용군으로 무차별 동원하였고 남아있던 노인과 부녀자는 잔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1․4후퇴 때는 미처 피난하지 못한 우익인사를 상산곡(현재 하남시 상산곡동)으로 끌고 가 마구 총살하였다. 그런가하면 수복 후에는 방위군에 인계한 좌익분자를 한밤중에 쇠사슬로 묶어 끊어진 광진교 밑에서 창으로 무차별 학살하는 등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적 현장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개물에 있는 구천면사무소는 폭격으로 인하여 전소되었다. 수복 후에는 천호동 397번지 구사거리 도로변에 있는 개인상점을 임대하였다가 현재 강동종합사회복지관이 있는 천호동 555번지로 신축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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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면사무소(1959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1962년 11월 21일 공포)「서울특별시 도․군․구의 행정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로 서울시가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확장함에 따라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중대면, 언주면, 대왕면 일부와 함께 성동구로 편입되었다. 이들 지역의 행정을 돕기 위해 동일자로 시행한 서울특별시 조례 제276호(1962년 12월 28일 공포)로 성동구의 천호출장소, 송파출장소를 신설하였다.

천호출장소의 관할구역은 5개의 행정동으로 하였다. 즉 명일․하일․상일․고덕동은 구천동에서 길․둔촌동은 선린동이 암사동은 암사동이, 성내․풍납동은 성내동이 이전의 곡교리는 천호동으로 개칭하여 각각의 행정을 담당하였다. 송파출장소에는 3개의 행정동을 두었는데 송파․석촌․삼전․가락동은 송파동에서 이(二)․ 방이․ 오금동은 옥천동에서, 장지․거여․문정․마천동은 거문동에서 각각 행정을 담당하였다. 출장소는 5계(係)에서 업무를 관장하였고 출장소장은 지방행정참사로서 구청장의 명(命)을 받아 사무관장과 소속공무원을 지휘 감독하였다.

1970년 5월 18일 서울시는 인구증가에 따른 관할구역 조정과 법정동과 행정동 사이가 일정하지 않은 명칭을 조정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조례 제613호에 의한 동 관할구역 변경 및 행정구역을 개칭하였다. 이에 따라 구천동은 명일동으로, 선린동은 길동으로 옥천동은 송파동으로, 거문동은 거여동으로, 신양동은 자양동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1973년 7월 1일에는 서울특별시 조례 제780호(1973년 6월 26일 공포)로 송파출장소를 폐지하고 영동출장소를 신설하였으며 동일자로 공포된 서울특별시 조례 784호에 의해 신설된 잠실동은 이에 속하였다. 자양동에서 행정을 담당하던 잠실동․신천동은 신설된 잠실동에서 행정을 맡게 되었다.

1973년 말 930,000명에 가까웠던 성동구의 인구가 1975년 10월에는 1,027,068명에 이르자 원할한 구행정을 위해서는 분구(分區)가 불가피 하게 되었다. 동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1975년 9월 23일 공포)로 성동구로부터 강남구를 분리 신설하였다.

강남구의 관할지역은 면적 139.2㎢에 51,708가구 인구 261,711명으로 양재, 도곡, 청담, 신사, 잠원, 서초, 내곡, 세곡, 일원, 잠실, 명일, 길, 암사, 성내, 천호, 송파, 방이, 거여동의 18개동이었다.

관할구역은 명일, 하일, 고덕, 상일, 길, 둔촌, 암사, 성내, 풍납, 천호, 송파, 석촌, 삼전, 가락, 이, 오금, 방이, 문정, 장지, 거여, 마천, 잠실, 신천, 일원, 수서, 자곡, 율현, 세곡, 역삼, 포이, 개포, 도곡, 논현, 신사, 학, 압구정, 청담, 삼성, 대치, 염곡, 내곡, 신원, 반포, 잠원, 서초, 양재, 우면, 원지동의 48개동이었다.

동일자로 동 관할구역 조정에 따른 분동으로 6개의 행정동이 증가되었다. 즉 잠실동과 방이동 일부를 잠실1동과 잠실2동으로 잠실 아파트 단지를 잠실3동과 잠실4동으로, 명일동을 명일동과 하일동으로, 천호동을 천호1동과 천호2동으로, 거여동을 거여동과 마천동으로 각각 분동하였다. 1977년 9월 1일에는 서울특별시 조례 제1181호에 의하여 성내동이 성내동과 풍납동으로, 1978년 10월 10일에는 서울특별시 조례 제1287호로 잠실2동에서 잠실2동과 잠실5동이, 암사동이 암사1동과 암사2동으로 분동되었다.

강남지역의 계속적인 발전과 인구증가로 197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9630호 (1979년 9월 26일 공포)에 의하여 천호출장소를 강동구로 승격시키고 강남구에서 분리신설 하였다.

신설된 강동구의 면적은 60.07㎢, 가구수는 96,595가구, 인구는 444,265명이며 하일, 상일, 명일, 고덕, 암사, 천호, 성내, 풍납, 길, 둔촌, 거여, 마천, 방이, 오금, 송파, 석촌, 가락, 문정, 잠실, 신천동 일원과 한강과 탄천이 합류되고 성동구 경계와 교차되는 지점으로부터 시계(市界)에 이어지는 탄천 중심선을 경계로 하여 그 동북지역을 관할로 하였다.

이때의 행정동은 하일, 명일, 암사 1,2동, 천호 1,2동, 성내, 풍납, 길, 거여, 마천, 방이, 송파, 잠실 1,2,3,4,5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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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 지도】

 

1980년 7월 1일에는 서울특별시 조례 제1413호(1980년 3월 31일 공포)에 의하여 천호1동이 천호1동과 천호3동으로, 암사1동이 암사1동과 암사3동으로, 성내동이 성내1동과 성내2동으로, 길동이 길동과 둔촌동으로, 마천동이 마천1동과 마천2동으로, 잠실4동이 잠실4동과 잠실6동으로 각각 분동되어 강동구의 행정동은 24개동이 되었다.

1983년 1월 1일에는 서울특별시 조례 제1691호(1982년 11월 10일 공포)에 의하여 송파동이 송파동, 가락동, 문정동으로 각각 분동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1일에는 서울특별시 조례 제1814호에 의하여 잠실본동이 신설되고, 길동이 길1과 길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명일, 하일, 풍납 분소를 신설하였다.

1985년 9월 1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2015호에 의하여 하일동을 하일동과 상일동으로, 명일동을 명일동과 고덕동으로, 천호2동을 천호2동과 천호4동으로, 둔촌동을 둔촌1동과 둔촌2동으로, 풍납동을 풍납1동과 풍납2동으로, 송파동을 송파동과 석촌동으로, 방이동을 방이동과 오금동으로 분동하였다. 대신 명일, 하일, 풍납의 3개분소는 폐지되었다.

강동구의 인구 증가폭은 이후 더욱 커져 1980년에 지하철 2호선의 개통으로 교통수송 분담율이 높아진데다 시원스레 뻗은 넓은 도로망과 ’86아시아 경기대회, ’88서울올림픽 유치로 고층아파트의 건립이 계속되는 등 변모의 폭을 넓혀나가자 강동구의 인구는 1988년에 984,696명에 이르러 분구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 1988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367호(1987년 12월 31일 공포)로 강동구에서 면적 33.87㎢ 128,464가구 496,089명의 인구와 18개 행정동으로 구성된 송파구를 신설 분구하게 되었다.

동년 7월 1일 강동구 조례 제59호(1988년 7월 1일 공포)로 명일동을 명일1동과 명일2동으로, 고덕동을 고덕1동과 고덕2동으로, 그리고 성내1동과 성내2동의 일부를 성내3동으로 분동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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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강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