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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동 주민들은 동(洞)이름에 아래 하(下) 자가 들어 있어 발전이 더디다고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73%가 개명(改名)을 요구해 2000년 1월 1일, 아래 하(下) 자는 빼고 ‘강일동’으로 고쳐 놓았다.

강일동엔 여러 성씨들이 전통의 집성촌(集姓村)을 이루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벌말과 눙골에는 청송(靑松) 심(沈)씨가, 강매 터엔 광주(廣州) 이(李)씨가, 가래여울엔 남평 문(文)씨들이 많이 살았다.

먼저, 심씨들은 서울시로 편입되기 이전에는 110여 세대가 살았었는데 지금은 60여 세대가 남아서 400년의 전통을 잇고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하나가 안산 또는 갈산 산신제(山神祭)다.

임진왜란 때, 무관인 심사원이 가족을 데리고 벌말에 정착한 것이 이 산신제의 시초가 되었다. 당시 안산엔 삼림이 우거져 밤에는 짐승들이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곤 했었다.

한번은 심사원이 한양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뜻밖에 길을 밝혀주는 불빛이 있어 유심히 살펴보니 그것은 커다란 호랑이의 눈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그러나 이때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밝혀주어 다른 짐승들은 주변에 얼씬도 못해 주민들에겐 오히려 큰 도움이 되어 이 호랑이를 ‘산신령(山神靈)’으로 모셔 그때부터 산신제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산신제는 음력 7월초, 1일부터 3일 사이에 열린다.

제사를 지냄에 부정적인 요소 즉,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제주(祭主)와 집사(執事) 두 사람을 뽑아서 말우물로 하루에 빚은 술과 좋은 과일 및 잘생긴 소를 제물로 바친다. 이때 포(脯)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제주와 집사 두 사람만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제단에 제물을 진설한 후 축문(祝文)을 읽고 제사를 마친다. 제사를 마치면 곧바로 제물을 골고루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제물을 받으면 가져다 집집마다 치성제(致誠祭)를 드린다.

안산(案山) 꼭대기에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표석에는 1993년 9월 30일에 강동구에서 ‘안산산신지위(安山山神之位)’라고 새겨 놓았다. 산 아래 밭에는 말(斗)우물(말 모양의 네모진 우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하여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강일동의 경계선에 이웃한 구산(龜山)마을은 경주 김씨들의 집성촌이다. 천주교의 103위성인 가운데 71번째 성인(聖人) 김우집(金禹集) 김성우 안토니오를 비롯해 박해시대에 많은 순교자가 탄생한 유서 깊은 마을이다.

구산성지(龜山聖地) 사적지의 담장을 돌아 문을 들어서면 잔디밭 한가운데 성모자상(聖母子像)이 있다. 이 모자상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을 지낸 김세중 화백이 조각한 것이다. 사적지 안에는 성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의 묘소와 현양비(顯揚碑)가 세워져 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김대건 신부가 사제가 되어 귀국한 후에 첫 미사를 이 구산에서 봉헌했다고 한다.

이곳 구산에서 천주교 성인으로 시성(諡聖)된 분들로는 순교한 김우집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김만집(金萬集)과 그의 아들 성희(聖熙), 김만집의 아들 차희(次熙), 김문집의 아들 경희(敬熙), 사촌 김주집의 아들 윤희(允熙), 최지현(崔祉鉉) 그리고 하일리의 심칠여(沈七汝)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