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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17년(1368)에 이집이 신돈을 탄핵하려다가 신돈이 이집을 죽이려고 체포령을 내리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집은 아버지 당(唐)을 등에업고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 경상도 영천에 사는 친우인 전직 사간(司諫) 최원도의 집에 몸을 의탁할 때의 일화다.

최원도의 집에 '제비'라는 예쁜  이름의  계집종이 있었다. 그때 제비 나이 열아홉 살이었다. 그의 상전이 어느 날 갑자기 한끼에 밥 세 그릇씩 먹고 방안에서 용변을 하는 등 반미치광이 행세를 시작하였다. 그 시중을 제비가 도맡아 하였던 것이다.

이 갑작스런 발광을 수상쩍게 여긴 주인마님이 제비로 하여금 염탐케 하였더니  벽장 속에 낯선 두사람을 숨겨두고 밖에 알리지 않게 하기 위한 속셈임을 알게 되었다.

벽장 속에서 2년 동안이나 숨어 살았으며 집안사람에게까지 그비밀을 유지코자  반광(半狂)을 연출한 것이었다. 우리 역사상 기록될만한  우정이  아닐수 없다. 또 이때 이사실을 염탐한 제비가 행여  부자간에라도  누설할까, 마님이 걱정을 했다.충직하기 이를  데  없었던 제비는 이 주인마님의  걱정을  눈치 채고 사약(死藥)을 내려달라고 복걸하였다.

마님은 울면서 돌아앉아 사약을 내렸고, 제비는 큰절을 하고 그것을 받아 마셨다.

제비 또한 역사상 기록될 만한 의비 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3년이 되던 해, 이집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최원도는 빈렴(臏斂, 장례의 모든절차)의 모든 일을 자기 아버지와 똑같이 하여 그의 어머니 무덤 옆에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시를 지어주면서 말하기를 "세상의 어지러움을 슬퍼하여 눈물이 옷깃히 가득하구나. 나그네의 효도와 정성은 저 세상까지 이르도다. 한산( 漢山) 은 아득히 멀어 구름과 연기가 가로 막히고, 나현(羅峴) 은 돌고 돌아 풀과 나무가 무성하도다. 하늘이 앞뒤로 가는 쌍마의 갈기를 점침과 같으니, 누가 그대와 내가 두 마음을 가졌다 히리요. 원컨대 세상에  길이 이와 같이 하여 모름지기 교정(交情)으로 하여금 굳게 하라" 하였으니 지금까지 모두 그 신의를 칭송하고 있다.

나현은 곧 최원도의 어머니를 장사 지낸 곳인데, 지세가 경상도에서는 우월하게 좋은 곳 중 하나다. 그뒤 최씨는 쇠(衰) 이씨는 귀성(貴姓)하니, 사람들은 '객이 주기(主氣)를 빼앗았다' 하였다.